옌스 바이스플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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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옌스 바이스플로크는 동독 출신의 스키 점프 선수로,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했으며,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개인 라지힐과 단체 라지힐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4번 우승했으며, 스키 점프 월드컵 통산 33승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호텔을 소유하고 있으며, 독일 TV 방송국의 스키 점프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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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바이스플로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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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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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동독 (1980–90) |
출생일 | 1964년 7월 21일 |
출생지 | 에를라브룬, 동독 |
신장 | 1.70m |
개인 최고 기록 | 201m |
시즌 | 1981 |
개인전 우승 | 33회 |
단체전 우승 | 1회 |
개인전 포디움 | 73회 |
단체전 포디움 | 6회 |
개인전 시작 횟수 | 191회 |
단체전 시작 횟수 | 9회 |
월드컵 종합 우승 | 1회 (1984) |
4힐 토너먼트 우승 | 4회 (1984, 1985, 1991, 1996) |
올림픽 메달 (남자 스키 점프) | |
1984 사라예보 | 스키 점프 개인 노멀힐 금메달 |
1994 릴레함메르 | 스키 점프 개인 라지힐 금메달 |
1994 릴레함메르 | 스키 점프 단체 라지힐 금메달 |
1984 사라예보 | 스키 점프 개인 라지힐 은메달 |
FIS 노르딕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 메달 | |
1985 제펠트 | 개인 노멀힐 금메달 |
1989 라티 | 개인 노멀힐 금메달 |
1984 엥겔베르크 | 단체 라지힐 은메달 |
1989 라티 | 개인 라지힐 은메달 |
1995 선더베이 | 단체 라지힐 은메달 |
1985 제펠트 | 단체 라지힐 동메달 |
1991 발 디 피엠메 | 개인 라지힐 동메달 |
1991 발 디 피엠메 | 단체 라지힐 동메달 |
1993 팔룬 | 개인 라지힐 동메달 |
FIS 스키 플라잉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 (남자 스키 플라잉) | |
1985 플라니차 | 개인 은메달 |
1990 비케르순 | 개인 동메달 |
2. 선수 경력
동독 대표 선수로 활동을 시작한 바이스플로크는 19세의 나이였던 1983-1984 시즌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작은 체구 때문에 독일어로 벼룩( Floh|플로de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같은 시즌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노멀 힐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스키 점프 월드컵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1]. 이후 핀란드의 마티 뉘캐넨과 함께 1980년대 중반 스키 점프계를 양분했다.
그의 선수 경력에서 주목할 점은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1990년 독일 통일로 동독에서 통일 독일로 소속이 바뀌는 변화와 1993년경 스키 점프 기술이 기존의 평행 기술에서 V자 스타일로 전환되는 격변기 속에서도 그의 성공은 계속되었다.
특히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는 첫 올림픽 금메달 이후 10년 만에 개인 라지힐과 단체 라지힐에서 2관왕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 대회 단체전에서는 그의 행동과 관련하여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5-1996 시즌,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이후 얀네 아호넨이 5회 우승으로 경신)을 세운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2]. 그는 월드컵 통산 33승,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 9개 등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은퇴 후에는 고향인 오버비젠탈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독일 ZDF 방송의 스키 점프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2. 1. 초기 경력 (1980년대 초)
1982-1983 시즌 스키 점프 주간에서 제4전 비쇼프스호펜 경기에서 스키 점프 월드컵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마티 니케넨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체구와 가벼운 몸 때문에 독일어로 벼룩(Floh|플로de)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다음 1983-1984 시즌, 19세의 나이로 동독 대표로서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열린 사라예보 올림픽에서는 노멀힐(70m급)에서 금메달, 라지힐(90m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스키 점프 월드컵에서도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1]. 이 시기 핀란드의 뛰어난 선수였던 마티 뉘캐넨과 경쟁하며 시즌을 주도했다.
이어진 1984-1985 시즌에도 스키 점프 주간에서 2연패를 달성했고, 1985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노멀힐(70m급) 금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2. 2. 전성기 (198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
1983-1984 시즌, 19세의 나이로 동독 대표로 출전한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와 가벼운 몸무게 때문에 독일어로 벼룩(Floh|플로de)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같은 시즌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에서는 노멀 힐 (당시 70m급)에서 금메달, 라지힐 (당시 90m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스키 점프 월드컵에서도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1].다음 1984-1985 시즌에는 핀란드의 뛰어난 선수 마티 뉘캐넨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시대를 양분했다. 바이스플로크는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2연패를 달성했고, 1985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노멀힐 금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1985-1986 시즌부터는 다소 성적이 하락하여 1987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와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부진을 딛고 1988-1989 시즌에 다시 부활했다. 1989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라지힐 은메달과 노멀힐 금메달을 따냈고, 월드컵에서는 5승을 거두며 종합 2위에 올랐다.
1990-1991 시즌에는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개인 통산 세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1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두 개의 메달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후 독일 통일과 스키 점프 기술의 주류가 V자 스타일로 변화하는 과도기를 겪으며 다시 성적이 주춤했고, 20대 후반의 나이와 맞물려 그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 3. 독일 통일과 V자 스타일 (1990년대 초 ~ 중반)
1990년 독일 통일이라는 변화와 1993년경 스키 점프 기술이 기존의 평행 기술에서 V자 스타일로 바뀌는 격변기 속에서도 바이스플로크의 성공은 계속되었다.1990-1991 시즌, 그는 스키 점프 주간에서 개인 통산 세 번째 종합 우승을 달성했으며, 1991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후 독일 통일과 V자 스타일로의 기술 전환기를 거치며 잠시 성적이 주춤하기도 했다. 당시 20대 후반이라는 나이 때문에 그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바이스플로크는 포기하지 않고 1993-1994 시즌에 V자 스타일을 완벽하게 익히며 다시 한번 정상급 기량을 선보였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는 개인 라지힐과 단체 라지힐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딴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1]. 이 시즌 스키 점프 월드컵에서는 총 7승을 거두며 개인 통산 두 번째 종합 2위를 기록했다.
30대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1995-1996 시즌에는 스키 점프 주간에서 네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얀네 아호넨 이전까지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4회) 보유자가 되었다. 바이스플로크는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2].
2. 3. 1.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단체전 논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바이스플로크는 개인 라지힐과 단체 라지힐 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이는 그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지 10년 만의 성과였다.그러나 단체전에서는 논란이 발생했다. 당시 독일 팀의 마지막 주자였던 바이스플로크는 135.5m라는 뛰어난 점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팀의 마지막 주자인 하라다 마사히코가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일본의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이스플로크는 하라다가 점프를 하기도 전에 그에게 다가가 승리를 축하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이후 하라다는 점프에서 큰 실수를 했고, 결국 금메달은 독일에 돌아갔다.
이 사건은 겨울 스포츠 역사상 가장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일부에서는 바이스플로크의 행동이 하라다의 실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으나, 하라다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 다음 경기에서 바이스플로크는 약 4만 명의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았는데, 관중들은 그의 이전 행동을 매우 불공정한 플레이이자 부정한 행위로 간주했다. 이에 바이스플로크는 관중들에게 손가락 욕설을 하는 것으로 대응하여 더욱 비판을 받았다.
2. 4. 은퇴 (1996년)
1995-1996 시즌, 바이스플로크는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통산 네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2]. 이는 당시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 역사상 최초의 4회 우승 기록이었으며, 이후 핀란드의 얀네 아호넨만이 5회 우승으로 이 기록을 넘어섰다. 그는 또한 선수 경력 동안 이 대회에서 5번의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30세의 나이로 프로 스포츠에서 은퇴를 선언했다[2]. 은퇴 시점까지 그는 스키 점프 월드컵 통산 33승 (2위 19회, 3위 21회), 종합 우승 1회[1],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 9개 등의 기록을 남겼다.
은퇴 후, 그는 고향인 작센 주 오버비젠탈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한편, 독일 ZDF 방송국의 스키 점프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3. 은퇴 후
현재는, 고향 작센 주의 오버비젠탈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한편, 독일 ZDF TV의 스포츠 해설자를 맡고 있다.
4. 주요 수상 기록
옌스 바이스플로크는 스키 점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오랜 기간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주요 수상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올림픽: 총 4개의 메달 획득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노멀 힐 금메달, 라지 힐 은메달[1]
-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개인 라지 힐 금메달, 단체 라지 힐 금메달
- 세계 선수권 대회: 총 9개의 메달 획득 (개인 금 2, 단체 은 2, 개인 은 1, 단체 동 2, 개인 동 2)
- 주요 성과: 개인 노멀힐 금메달 (1985, 1989), 개인 라지힐 은메달 (1989)
- 스키 플라잉 세계 선수권 대회: 은메달 1개 (1985), 동메달 1개 (1990)
- 스키 점프 월드컵: 통산 33승 (2위 19회, 3위 21회), 종합 우승 1회 (1983-84)[1]
-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 통산 4회 종합 우승 (1983-84, 1984-85, 1990-91, 1995-96), 준우승 5회. 4회 우승은 당시 최다 기록이었다.[2]
- 홀멘콜렌 국제 스키 대회: 2회 우승 (1989, 1990)
- 홀멘콜렌 메달: 1991년 수상
- 선수권 대회:
- 동독 선수권: 라지힐 2회 우승 (1985, 1989), 노멀힐 2회 우승 (1986, 1989)[3]
- 독일 선수권: 노멀힐 3회 우승, 라지힐 2회 우승
4. 1. 올림픽
1983-1984 시즌, 19세의 나이로 동독 대표로 출전한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에서 노멀 힐 (당시 70m급) 금메달과 라지 힐 (당시 90m급) 은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1]그러나 이후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하며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 통일과 스키 점프 기술의 변화(V자 스타일 도입)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나, 1993-1994 시즌 V자 스타일을 완전히 익히며 부활했다. 첫 올림픽 금메달로부터 10년이 지난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개인 라지 힐과 단체 라지 힐 종목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단체전에서는 극적인 우승을 경험했다. 독일 대표팀의 일원으로 나선 바이스플로크는 마지막 점프에서 135.5m라는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당시 일본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였던 하라다 마사히코가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일본의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하라다가 착지에서 실수하면서 결국 독일이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바이스플로크가 하라다의 점프 직전에 축하 인사를 건넨 것이 하라다의 실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하라다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
4. 2. 세계 선수권 대회
FIS 노르딕 세계 스키 선수권 대회에서 총 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개인 노멀힐 종목에서 두 차례(1985년, 1989년)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1989년에는 개인 라지힐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단체 라지힐 종목에서는 은메달 2개(1984년, 1995년)와 동메달 2개(1985년, 1991년)를 획득했고, 개인 라지힐에서도 동메달 2개(1991년, 1993년)를 따냈다. 다만, 1987년 노르딕 스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연도 | 대회 | 종목 | 메달 |
---|---|---|---|
1984 | 엥겔베르크 | 단체 라지힐 | 은메달 |
1985 | 제펠트 | 개인 노멀힐 | 금메달 |
1985 | 제펠트 | 단체 라지힐 | 동메달 |
1989 | 라흐티 | 개인 노멀힐 | 금메달 |
1989 | 라흐티 | 개인 라지힐 | 은메달 |
1991 | 발 디 피엠메 | 개인 라지힐 | 동메달 |
1991 | 발 디 피엠메 | 단체 라지힐 | 동메달 |
1993 | 팔룬 | 개인 라지힐 | 동메달 |
1995 | 선더베이 | 단체 라지힐 | 은메달 |
또한 FIS 스키 플라잉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1985년 대회에서 은메달, 1990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각각 획득했다.
4. 3. 스키 점프 월드컵
1982-83 시즌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첫 스키 점프 월드컵 개인전 우승(비쇼프스호펜)을 포함하여 마티 뉘캐넨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19세의 나이로 맞이한 1983-84 시즌에는 동독 대표로 4대 점프대 토너먼트 종합 우승과 함께 월드컵 종합 우승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1] 작은 체구와 가벼운 몸 때문에 독일어로 벼룩(Floh)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이후 핀란드의 마티 뉘캐넨과 경쟁하며 한 시대를 이끌었다. 1984-85 시즌에는 4대 점프대 토너먼트 2연패를 달성했다. 잠시 성적이 주춤하기도 했으나(1985-86 시즌부터), 1988-89 시즌 월드컵 5승을 거두며 종합 2위를 기록하며 부활했고, 1990-91 시즌에는 4대 점프대 토너먼트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 통일과 스키 점프 기술이 평행 기술에서 V자 스타일로 변화하는 과도기 속에서도 12년 이상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했으며, 특히 1993-94 시즌에는 V자 스타일을 완전히 익히고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여 월드컵 7승을 거두며 종합 2위에 올랐다.
1995-96 시즌,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통산 네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당시 최다 우승 기록이었으며(이후 얀네 아호넨이 5회 우승으로 경신), 이 대기록 달성과 함께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2] 그는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4번의 우승 외에도 5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스키 점프 월드컵 통산 33승 (2위 19회, 3위 21회)을 기록했으며, 종합 우승은 1회 차지했다.
시즌 | 종합 | 4대 점프대 토너먼트 | 스키 플라잉 | 스키 점프 (JP) 컵 |
---|---|---|---|---|
1980/81 | — | 110 | N/A | N/A |
1982/83 | 16 | 2위 | N/A | N/A |
1983/84 | 1위 | 1위 | N/A | N/A |
1984/85 | 4 | 1위 | N/A | N/A |
1985/86 | 16 | 22 | N/A | N/A |
1986/87 | 11 | 7 | N/A | N/A |
1987/88 | 6 | 2위 | N/A | N/A |
1988/89 | 2위 | 2위 | N/A | N/A |
1989/90 | 6 | 3위 | N/A | N/A |
1990/91 | 8 | 1위 | 19 | N/A |
1991/92 | 38 | 39 | — | N/A |
1992/93 | 11 | 3위 | — | N/A |
1993/94 | 2위 | 2위 | — | N/A |
1994/95 | 6 | 12 | 14 | N/A |
1995/96 | 4 | 1위 | 8 | 4 |
No. | 시즌 | 날짜 | 개최지 | 경기장 | 규격 |
---|---|---|---|---|---|
1 | 1982/83 | 1983년 1월 6일 | 오스트리아 비쇼프스호펜 | 파울-아우서라이트너-찬체 K109 | LH |
2 | 1983/84 | 1984년 1월 1일 | 서독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 그로세 올림피아찬체 K107 | LH |
3 | 1984년 1월 4일 |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 베르기젤 찬체 K106 | LH | |
4 | 1984년 1월 6일 | 오스트리아 비쇼프스호펜 | 파울-아우서라이트너-찬체 K111 | LH | |
5 | 1984년 1월 11일 |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 트라폴리노 이탈리아 K92 | NH | |
6 | 1984년 1월 15일 | 체코슬로바키아 리베레츠 | 예슈테드 A K115 | LH | |
7 | 1984년 2월 12일 |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올림픽) | 이그만 K90 | NH | |
8 | 1984년 3월 24일 | 유고슬라비아 플라니차 | 스레드냐 블로도코바 K90 | NH | |
9 | 1984/85 | 1985년 1월 1일 | 서독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 그로세 올림피아찬체 K107 | LH |
10 | 1985년 2월 17일 | 스위스 엥겔베르크 | 그로스-티틀리스-찬체 K120 | LH | |
11 | 1986/87 | 1986년 12월 6일 | 캐나다 썬더베이 | 빅 썬더 K89 | NH |
12 | 1987/88 | 1988년 1월 24일 | 스위스 엥겔베르크 | 그로스-티틀리스-찬체 K120 | LH |
13 | 1988/89 | 1989년 1월 22일 | 동독 오버호프 | 렌슈타이크찬체 K90 | NH |
14 | 1989년 3월 5일 | 노르웨이 오슬로 | 홀멘콜렌 K105 | LH | |
15 | 1989년 3월 8일 | 스웨덴 외른스쾰스비크 | 파라디스퀼렌 K82 | NH | |
16 | 1989년 3월 25일 | 유고슬라비아 플라니차 | 스레드냐 블로도코바 K90 | NH | |
17 | 1989년 3월 26일 | 유고슬라비아 플라니차 | 블로도코바 벨리카 K120 | LH | |
18 | 1989/90 | 1989년 12월 17일 | 일본 삿포로 | 오쿠라야마 K115 | LH |
19 | 1990년 1월 1일 | 서독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 그로세 올림피아찬체 K107 | LH | |
20 | 1990년 1월 17일 | 폴란드 자코파네 | 비엘카 크로키에프 K116 | LH | |
21 | 1990/91 | 1990년 12월 30일 |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 | 샤텐베르크 찬체 K115 | LH |
22 | 1991년 1월 1일 |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 그로세 올림피아찬체 K107 | LH | |
23 | 1993/94 | 1993년 12월 12일 | 슬로베니아 플라니차 | 블로도코바 벨리카 K120 | LH |
24 | 1993년 12월 14일 | 이탈리아 프레다초 | 트라폴리노 달 벤 K90 (야간) | NH | |
25 | 1993년 12월 30일 |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 | 샤텐베르크 찬체 K115 | LH | |
26 | 1994년 1월 22일 | 일본 삿포로 | 미야노모리 K90 | NH | |
27 | 1994년 1월 23일 | 일본 삿포로 | 오쿠라야마 K115 | LH | |
28 | 1994년 3월 5일 | 핀란드 라흐티 | 살파우셀카 K90 | NH | |
29 | 1994년 3월 27일 | 캐나다 썬더베이 | 빅 썬더 K90 | NH | |
30 | 1994/95 | 1995년 1월 29일 | 핀란드 라흐티 | 살파우셀카 K114 | LH |
31 | 1995/96 | 1996년 1월 6일 | 오스트리아 비쇼프스호펜 | 파울-아우서라이트너-찬체 K120 | LH |
32 | 1996년 1월 20일 | 일본 삿포로 | 미야노모리 K90 | NH | |
33 | 1996년 2월 17일 | 미국 아이언 마운틴 | 파인 마운틴 K120 | LH |
4. 4. 스키 점프 4대 점프대 토너먼트
1982-1983 시즌 4대 점프대 토너먼트(당시 명칭 스키 점프 주간)에서 마티 뉘캐넨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 대회 제4차전인 비쇼프스호펜에서 생애 첫 스키 점프 월드컵 우승을 거두었다.다음 해인 1983-1984 시즌, 19세의 나이로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첫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즌은 그에게 최고의 해로,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노멀 힐 금메달과 월드컵 종합 우승까지 동시에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1]. 작은 체구 때문에 '벼룩(Floh)'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4-1985 시즌에는 4대 점프대 토너먼트 2연패에 성공하며 마티 뉘캐넨과 함께 당대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이후 몇 시즌 간 다소 주춤했으나, 1990-1991 시즌에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개인 통산 세 번째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는 독일 통일 이후 거둔 성과로,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1995-1996 시즌, 그는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네 번째 종합 우승을 달성하며 이 대회 역사상 최초로 4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 대회를 끝으로 그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2]. 그의 4회 우승 기록은 훗날 핀란드의 얀네 아호넨이 5회 우승을 기록하며 경신되었다. 바이스플로크는 4번의 우승 외에도 4대 점프대 토너먼트에서 총 5번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4. 5. 기타
바이스플로크는 작은 체구와 가벼운 몸 때문에 독일어로 벼룩(Floh)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졌다.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단체전에서는 마지막 주자였던 일본의 하라다 마사히코가 점프하기 전, 바이스플로크는 이미 135.5m의 좋은 기록을 낸 상태였다. 하라다가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일본의 우승이 유력했지만, 하라다가 점프에 실패하면서 결국 독일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바이스플로크가 하라다에게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넨 것이 하라다의 실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도 있었으나(악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임),[2] 하라다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2] 이 사건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1], 다음 경기에서 바이스플로크는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자 손가락 욕으로 대응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 바이스플로크는 고향인 작센 주 오버비젠탈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한편, 독일 텔레비전 방송국 ZDF의 주요 스키 점프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2][3]
참조
[1]
문서
この年、バイスフロクはミズノのジャンプスーツを着ていたことが一部で話題を呼んだ。
[2]
문서
フィンランドのヤンネ・アホネンは通算5度総合優勝した。
[3]
웹사이트
スキージャンプ東ドイツ選手権
http://www.sport-k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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